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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 씀 긁어오기] 우리는 오늘 처음봤다

2021년 어느 글방에 참여하여 썼던 글이다. (2/5)


우리는 오늘 처음 봤다. 우리는 손님이 얼마 없는 이 작은 카페에 각자 자신의 시간을 보내러 들어왔다가 아주 우연히 마주쳤다. 우리는 각자의 테이블에서 서로 할 일을 하다가 한 번씩 고개 를 들어 환기를 할 때 이따금씩 눈이 마주쳤다. 한 세 번째 마주치는 때에 우리 중 한 명이 눈길 을 거두지 않았다. 나머지 한 명이 그 사실을 알아챘지만 모른 척하고 다른 곳을 봤다. 그리고 속으로 눈길을 거두지 않은 저 사람이 나의 테이블로 와 말을 걸어줬으면, 아니면 내가 먼저 거 는 건 어떨지 생각한다. 생각만 한다.

생각만 한다.

아무에게나 마음을 내주고 싶다. 오늘 처음 만난 이름 모를 사람에게도 마음을 내어주고 싶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마치 오랜만에 길에서 마주친 친구처럼 인사하고 대뜸 친한 척을 하고 싶다.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나 아무 사이 아니므로, 서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다가 야금야금 알아갈 때 마다 토끼눈을 뜨고 넌 그래요? 난 이래요. 하고 싶다. 이따 오후에는 뭘 할 건지, 저녁 메뉴는 뭔지, 내일은 좋아하는 영화와 음악에 대해서 물어보고 이번 주말에는 같이 자전거를 타러 가자고 말하고 싶다. 당신이 하는 이야기에 공감도 하고 싶고 비난도 하고 싶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하면 같이 울어주고 싶다. 여행 이야기를 하면 같이 계획을 짜고 싶다. 그러 다가 갑자기 티켓을 끊고 아무 준비 없이 같이 떠나보고 싶다. 여행지에서 입맛이 안 맞는다든지 숙소를 고르는 기준이 다르다든지 하는 이유로 잠깐 다퉈도 보고 싶다. 그러다가 금방 화해하고 맥주 한 캔을 나눠 마시면서 산책을 하고 싶다. 각자 재밌게 읽은 책을 바꿔서 읽어보고, 밑줄이 그어진 문장이 왜 마음에 든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난데없이 전화해서 지금껏 말 해본 적 없는 주제들로 세 시간 동안 수다를 떨어보고 싶다. 내가 지금 글방에 다니고 있는데 너도 내 글이 궁 금하지 않냐고 물어보고 싶다. 요가를 같이 다녀보지 않겠냐고 물어오면 난 요가보다는 클라이밍 을 해보자고 하고 싶다. 내가 비오는 날이 싫다고 말하면 그 사람은 좋다고 말했으면 좋겠다. 내 가 싫어하는 걸 그 사람이 좋아해도 괜찮아보였으면 좋겠다. 서로 닮은 것보다 다른 게 많아도 괜찮고 싶다. 서로에게 너그러운 것이 뭔지 체험하게 하고 싶다. 나 자체로 수용 받는 게 뭔지 오로지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을 내 준 사람이 나를 더 이상 궁금해 하지 않고 내가 그를 더 이상 궁금해 하지 않게 되더라도, 괜찮고 싶다. 아무에게나 마음을 쉽게 내어주고, 그 마음이 쉽게 거둬지지가 않더라도, 그 사람이 그런 나를 거부하는 때가 오더라도, 괜찮고 싶다. 상처받아도 아무렇지 않았 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 아무에게나 똑같이 시들지 않는 내 마음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는데, 나는 이미 당신을 이만큼 알았다가 벌써 상처받을 생각까지 했는데, 눈길이 오던 자리를 쳐다보니 거기엔 아무도 없다.

      1. 무아 씀.

#essay #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