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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자는 웁니다

1년에 두 번 정도 크게 고민하는 시기가 있다. 그것은 명절 연휴. 연휴에 집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만약 간다면 며칠을 머무를 것인가. 언제 가서 언제 돌아올 것인가. 연휴 말고 바로 다음 주에 가는 건 어떤가. 설 말고 추석에 가는 건 어떤가. 엄마에게 용돈을 얼마를 줄 것인가. 조카 용돈은 또 얼마를 줄 것인가.

나의 본가는 대구이고 현재 나는 경기도 모처에서 살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쭉 독립한 상태이기 때문에 명절에는 반드시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다. 대학생 때부터 집에 가지 않을 수 있다면 웬만하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냥 이동이 귀찮아서이고. 가족들과 사이가 나쁜 건 아니지만, 싸우지 않고 그럭저럭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기 마련이다(나뿐만 아니라 가족도). 그런 차원에서 그 피곤함을 감수하는 것도 꽤 큰 허들이 되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 아빠와 정치적인 이슈로 크게 말다툼을 한 적이 있고(아빠도 이걸 말다툼이라고 기억할지는 모르겠다.) 그 이후로 같이 있는 공간에서 정치 이야기가 화두로 오를까 봐 전전긍긍하게 되었다. TV를 켰는데 뉴스 채널이 나오면 재빠르게 돌린다든지, 식사 자리에서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있다가 자연스럽게 다른 화재로 돌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내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는 있다. 이런 노력은 나만 하는 것 같은데, 다른 가족들은 내가 이런 이야기를 불편해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밥상머리 주제로 정치를 자주 끌어들인다. 어쩔 때는 내가 가족 구성원 모두와 다른 당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겨냥해 무안을 주는 언사를 하기도 한다. 그냥 나만 없으면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묘한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번 연휴에도 어김없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정치 이슈가 나왔고, 나는 그 잠깐이 가시방석같이 느껴졌다. 그 잠깐에도 너무 큰 에너지를 뺏긴 나머지 식욕이 떨어지기까지 했다. 나를 무안 주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냥 듣고만 있어도 짜증이 치밀었다. 

물론 이렇다고 해서 집안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경색되어 있거나 모든 대화가 정치적인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사는 얘기, 요즘 하고 있는 고민, 이웃집에 새로 이사 온 가족 얘기, 나도 몰랐던 내 고등학교 동창의 출산 소식, 엄마가 계획하고 있는 운동모임에서의 여행, 아빠의 사이클링 모임 얘기, 아빠의 은퇴 이후 새로운 직업에 대한 얘기, 조카 얘기 등등. 아주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떠든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 이야기들이 또 언제, 어떻게 정치 이야기로 번질지 은은한 긴장감을 가지고 경계한다. 이런 이유로 본가에 가기 전부터 갈지 말지 등등을 아주 오래, 깊이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피곤한 고민이 앞으로도 주욱 이어질 것을 생각하면 그냥 눈을 질끈 감고 싶어지는 기분이 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인가 싶기도 하고. 복잡한 심정이다.

나는 엄마, 아빠를 사랑하고 집을 떠나올 때 남겨진 그들의 얼굴을 보면 애처로운 기분이 든다. 기차역에서 엄마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 눈물이 날 것 같다. 내가 자주 집에 오지 않아서, 원하는 만큼 자주 볼 수 없어서 서운해하는 기색이 느껴질 때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럼에도, 불편한 긴장을 안고 해야만 하는 모든 대화가 나를 지나치게 피곤하게 한다. 벌써 재작년이 되어버린 12월 계엄 이후, 그냥 정치적 견해가 다를 뿐이라는 이성적인 문장으로는 이 불편한 마음이 해소되지 않는다. '고작' 이런 이유로 얼굴을 자주 비추지 않으니, 불효 자식이라 해도 어쩔 수가 없다.

#daily #essay